이선주님의 다른 아티클 더 보기

UI/UX

하인즈의 ‘거꾸로 된 케첩’으로 본 UX의 본질

UX는 일관된 관찰과 개선 과정에서 나온다

※ 본 콘텐츠는 프로덕트 디자이너 이선주님과의 제휴로 제작됐습니다. 원문은 본문 하단 브런치스토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UI와 UX는 어떻게 다른가?

지금은 UX라고 말하면 대부분 이해하지만, 과거에는 UX를 설명하기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두 글자로 줄여 쓰는 용어이기도 하고, ‘User Experience(사용자 경험)’라는 용어만으로는 실제로 어떤 일을 하는지 쉽게 짐작하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한때 UX를 설명하기 위한 몇 가지 예시가 유행했고, 지금은 밈처럼 소비되기도 하는데요. 그중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하인즈의 케첩 용기입니다.

하인즈 케첩 용기 비유는 UI·UX를 설명하기 위해 흔히 사용되는 예시다(자료=작가 제작)

일반적인 유리병으로 제작된 좌측 케첩 용기가 UI를 의미한다면, 케첩을 뿌리는 데 적합한 형태로 디자인된 우측 플라스틱 용기가 UX를 고려한 설계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단순한 비교는 UI와 UX가 지닌 연관성과 의미를 왜곡할 수 있습니다. UI는 더 간단한 기술이고, UX는 더 고급 기술이라는 뉘앙스를 담고 있기 때문이죠.

“병을 거꾸로 세워 사용 경험을 혁신했다”는 설명은 UX를 단순하지만 통찰력 있는 발상의 결과, 즉 ‘번뜩이는 아이디어’ 정도로 축약해버립니다. 하지만 UX의 본질은 단발적인 영감이 아니라, 일관된 관찰과 개선의 과정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됩니다.

병의 디자인(상단)에 따라 달라지는 사용 경험(하단)(자료=HatchWorks @Facebook)
UI와 UX의 차이(자료=Nintex)

위 두 이미지는 UI와 UX의 차이를 훨씬 더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하인즈가 해결하려고 한 사용자의 문제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과거에는 케첩처럼 점도 있는 물체도 유리병에 담았습니다. 이 경우 용기를 뒤집어 바닥을 쳐야만 내용물이 나왔죠. 문제는 케첩이 절반쯤 남았을 때입니다. 용기를 뒤집거나 세워두는 사이에 공기가 들어가면 내용물이 나오지 않거나 공기와 섞여 쏟아지며 사방에 튀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하인즈는 마개를 용기 바닥 부분으로 옮기고 용기의 소재와 형태까지 바꿔 실제 사용 경험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리고 하인즈의 문제 해결 과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단순하게 만들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주장하던 시기는 지났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디자인은 그냥 단순할 뿐이죠. 사용자가 단순하고 쉬운 경험을 누리려면, 복잡하고 정교하며 연속성이 있는 해결책이 필요합니다. 하인즈의 사례를 통해 자세히 알아봅니다.

140년, 문제 해결의 역사

초기 하인즈 케첩 디자인(자료=GBO)

1869년 설립된 하인즈는 1879년부터 케첩을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케첩 용기의 첫 번째 혁신은 1890년 등장한 팔각형 유리병입니다. 당시에는 케첩 유리병이 미끄럽다는 소비자 불만이 많았는데요. 팔각형 모양은 식탁 위에서 병을 놓치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효율적인 디자인이었습니다.

이 팔각형은 금세 하인즈의 브랜딩이 됐고요. 이후에도 하인즈는 꾸준히 용기 디자인을 개선했습니다. 유리병을 짤 수 있는 플라스틱으로 바꾸고, 병뚜껑을 더 열기 쉽게 바꾸었죠. 모든 개선 사항은 딱 한 가지 목표, 즉 용기 안에 담겨 있는 소스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더 쉽게 먹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습니다.

2002년, 거꾸로 짜는 용기의 등장

하인즈 케첩 용기 디자인의 변천사(자료=GBO)

하인즈의 대명사가 된 ‘거꾸로 된 짜는 용기(The Upside-Down Squeeze Bottle)’는 2002년 출시됐습니다. 하인즈크래프트의 긴 역사 중 비교적 최근의 일이죠. 하인즈가 짜기 쉬운 용기를 만들기로 결심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하인즈의 케첩 용기가 플라스틱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된 EZ Squirt(자료=Snackhistory)

우선 소비자가 변했습니다. 6세 아이들이 40대 성인(부모님의 연령대)보다 60% 더 많은 케첩을 소비하게 됐죠. 이를 파악한 하인즈는 2000년 짜기 쉬운 호리병 모양의 용기인 EZ Squirt를 출시했습니다. 현재는 단종됐지만, 연질 플라스틱 재질에 짜기 쉬운 디자인은 용기의 재질을 유리에서 플라스틱으로 완전히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또 90년대 후반부터 소스(케첩) 소비가 줄기 시작했는데요. 이에 소비자를 면밀히 관찰한 결과, 사람들이 적은 양의 내용물이 남았을 때 용기를 냉장고에 거꾸로 보관한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기 위해서죠.

이처럼 데이터를 통해 사용자의 행동 변화를 감지한 하인즈는 설문조사와 면담을 거쳐 구체적인 문제를 발견할 수 있었고요. 이런 세심한 관찰과 조사가 모여 지금 우리가 쓰는 거꾸로 된 용기의 등장으로 이어졌습니다.

진짜 혁신은 뚜껑 기술력

뚜껑의 기술력이 아니었다면 거꾸로 된 용기는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자료=GBO)

거꾸로 된 용기. 누구나 만들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게 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기술력에 있습니다. 뚜껑이 아래로 향하게 세워둘 경우 자칫 내용물이 새어 나올 수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하인즈의 진짜 혁신은 뚜껑의 기술력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하인즈는 2002년 거꾸로 된 케첩을 출시하며 밀봉력이 향상된 새로운 뚜껑을 선보입니다. 폴 브라운이 설계한 발리톤 캡(Balaton Cap)이 그 주인공인데요.

비파괴 검사로 본 발리톤 캡의 재질 밀도. 뚜껑의 밀도가 일정하지 않으면 재활용이 어렵다(자료=Lumafield)
일정한 양의 소스를 내보려면 뚜껑에서 일정한 압력이 가해져야 한다. 발리톤 캡은 기존 뚜껑에 비해 더 안정적인 압력을 줄 수 있도록 개선됐다(자료=Lumafield)

출시 후 약 20년 동안 발리톤 캡은 많은 개선을 거쳤습니다. 지난 2022년에는 실리콘 부품을 완전히 제거했습니다. 덕분에 연간 3억 개의 버려지는 뚜껑을 100% 재활용할 수 있게 됐고요, 부품의 밀봉력도 높아졌습니다. 또 완전히 닫힐 수 있도록 개선해 실수로 덜 닫은 상태로 보관하다 소스가 새는 문제도 해결했습니다. 아울러 적은 힘으로도 뚜껑을 열 수 있어 노년층의 불편도 해소했죠.

문제 해결의 일관성

팔각형 유리병 디자인 시안(자료=하인즈)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하인즈는 창업 초기부터 소스를 담는 용기에 많은 투자를 해왔습니다. 하인즈가 일관되게 집중한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이 내용물을 남김없이 먹길 원했다’는 점입니다. 이는 하인즈뿐 아니라 모든 소스 소비자가 겪는 문제였는데요.

다른 회사와 차이점은 하인즈가 지속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왔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노력은 매출 상승으로 이어졌습니다. 더 많은 소스를 남김없이 먹을 수 있게 되자 자연스레 소비자의 선택을 받게 된 것이죠.

또 소스를 사용할 때 겪는 불쾌함을 줄일 수 있는 방법에도 집중, 마케팅과 브랜딩에도 신경썼습니다. 예컨대 유리병에서 플라스틱 용기로 변경되자 소스가 마구 튀는 일이 줄게 됐는데, 이를 광고에 적극 활용했습니다.

이처럼 UX는 그저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라, 관찰과 실험, 일관성 있는 개선의 과정입니다. 하인즈가 보여준 UX는 ‘한 번의 영감’이 아니라, 수십 년에 걸쳐 누적된 문제 해결의 결과물이었죠.

UX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과정

누구나 케첩 용기를 거꾸로 새워 두면 내용물을 남기지 않고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를 제품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쏟아지지 않는 뚜껑과 탄력 있는 소재가 필요했습니다. 이 두 가지는 실제 현장에서 소비자를 끊임없이 관찰하지 않고서는 얻어낼 수 없는 정보였죠.

국내에는 UX에 대한 오해가 퍼져있습니다. 제작 과정보다는 단편적인 ‘팁’으로 소비되고 있으며, 마치 개인의 뛰어난 아이디어나 리더십으로 주도되는 것처럼 인식됩니다. 하지만 사용자 경험은 구성원과 팀 전체의 협업으로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거기엔 항상 꾸준한 작업과 개선이 포함되죠.

좋은 제품을 만드는 일은 많은 시간과 비용을 요구합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나 혜성처럼 등장한 천재성이 소비자에게 필요한 UX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뭅니다. 하인즈의 거꾸로 된 용기가 140년간 사용자의 습관을 추적해온 결과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원문 보러 가기: 거꾸로 된 케첩의 UX

  • 에디터장준영 (zzangit@ditoday.com)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이선주님의 다른 아티클 더 보기

성장하는 실무자를 위한
단 하나의 뉴스레터

뉴스레터 구독하기
하루동안 안보기